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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대 동북아연구소 주최, 한중일 국제학술대회 ‘성료’
충무행복포럼, 아산문화관광진흥협동조합, 아산문화재단 주관
C뉴스041
▲ 제1회 한·중·일 국제학술대회 후 기념촬영 모습     © C뉴스041

 

 U1대 동북아연구소가 주최하고 충무행복포럼(상임대표 박성순), 아산문화관광진흥협동조합(이사장 김성태), 아산문화재단이 주관한 제1회 한·중·일 국제학술대회가 성료했다.

 

 지난 21일 아산시를 방문한 중국 강월화 하얼빈 안중근의사 전 기념관장, 일본 김봉진 키타큐슈대학 교수, 장욱토 다롄법다법률사무소 변호사, 중국 주상령 뤼순 일아감옥구지박물관 초대관장, 김월배·홍정모 대련외국어대학교수 등은 고종황제를 폐위시키기 위해 이토 히로부미가 방문해 논의했던 온양관광호텔을 숙소로 잡고 일정을 이어갔다.

 

 첫 일정으로 지난 22일 오전 10시 현충사를 방문해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참배하고 이순신 기념관을 둘러본 후 오후 1시30분부터 아산시 온양관광호텔 세미나실에서 ‘제1회 독립과 평화를 위한 아산 담론’이란 주제로 국제학술심포지엄을 가졌다.

 

 이날 심포지엄은 김봉진 일본 키타큐슈대학 교수의 ‘새롭게 본 청일전쟁의 결과와 그 문제들’이란 주제로 기조강연 후 제1부 ‘독립을 말하다’에 대해 김성태 이사장의 진행으로 김월배 다롄 외국어대 교수의 ‘안중근의사 독립정신과 아산시 독립운동가 관련성 고찰’, ‘윤봉길 의사의 선양과 독립정신’ 발표와 강월화 전 관장 및 장욱토 변호사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이어 제2부 ‘평화를 말하다’에선 박성순 U1대 교수의 ‘아산에서의 청일전쟁’, 주상령 초대관장의 ‘청일전쟁 상처의 물적 증거’,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의 ‘임진왜란 시기 아산지역 이순신 활동에 대한 소고’로 발표와 김성태 이사장 및 홍정모 다롄외국어대 교수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심포지엄에서 김봉진 교수는 기조강연을 통해 “청국은 조선이 완전무결한 독립, 자주의 나라임을 확인하고, 따라서 독립, 자주의 체제를 해치는 청국에 대한 조공, 전례 등은 이후 완전히 폐절한다”며 “청국이 주장한 ‘조선=속국, 속방론’을 부인하려는 일본의 속셈이 깔려있으며, 이로써 일본은 청국에 의한 조선의 비호를 막는 한편 조선 진출의 주도권을 잡고자 한 것이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말과 글은 일본의 잔재가 크다. ‘독립’이란 글자도 지난 아픈 과거를 되새기는 표현은 있으나 미래지향적으론 독립보다 인류운명공동체 등으로 널리 알려 아산의 역사를 자랑하고 세계화로 퍼트리는 주역에 힘써야한다”고 강조했다.

 

 또 김월배 교수는 “아산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는 44명이 있으며, 안중근 의사의 상무주의와 아산출신 홍가륵 의열단원, 안중근 의사 동생 안정근과 같이 독립운동을 한 아산의 독립운동가는 이민화, 안중근 의사 동생 안공근과 같이 독립운동을 한 아산의 독립운동가는 민병길, 이규갑이 있다”며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고 대한민국 최고의 성웅 이순신 장군의 고향답게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아산시라고 생각한다. 아산시는 청일전쟁이라는 매개체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과 같은 공동 운명체를 같이 한다. 안중근 의사 동생들과 아산시 독립운동가 일부와의 운명적 공동체도 일부 확인됐다”고 아산과 뤼순의 숙명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윤봉길 흥구의거와 평화’ 주제발표에 우강 상해 홍커우공원(현 루쉰공원) 원장의 사정상 불참으로 대리 발표하면서 아산의 옆 지역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의 일생과 1932년 4월29일 거사의 역사를 현장감있게 전하며 “1988년부터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가 매년 4월29일 홍커우 공원에서 추모행사를 거행하며, 1993년 7월부터 홍커우공원에서는 원림 설계를 참조하면서 매정(梅停)을 건립했으며 1994년에는 매원을 건립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4년 3월27일 매정 참관, 이홍구 전 총리가 1995년 5월14일 매원 방문,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4월30일 영부인 김옥숙 여사와 함께 매원을 참관했다”고 말했다.

 

 토론에서 장욱토 변호사는 “2010년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 참가해 효창공원에서 한국 민족 영웅의 묘소를 참배하게 됐으며, 윤봉길 묘소가 있었고, 윤봉길은 중국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영웅”이라고 강조한 뒤, “나는 모든 한국 민족 영웅의 묘소 앞에서 3번이나 허리를 굽혀 한국독립과 중국 항일전쟁을 위한 희생에 대해 숭고한 사의를 표했고, 김구 기념관에서 김구 선생님 초상을 향해 3번 허리를 굽혔다. 동반한 한국 관원이 기념관에서 선물을 고르라고 하여 김구 선생님이 쓰신 시가 적혀 있는 책갈피를 골랐다”고 전했다.

 

 덧붙여 장 변호사는 “나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이준 기념관에 갔을 때 한국인 관장이 중국사람이 왜 여기에 관심이 있을까? 하기에 내가 특별히 원대한 포부가 실현되지 못한 이 영웅을 추모하러 왔다. 당시 동아지역의 평화와 전쟁의 선택을 앞두고 중국과 한국은 피로 맺은 공동적인 운명을 가지고 있는데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있다”며 “평화의 길은 마치 길고 험한 산길과 같다. 이 산길의 현애와 절벽에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다. 추운 겨울이 되면 길이 미끄럽고 위험한 시기에 항상 아름다운 매화가 피어 향기를 낸다. 풍설에서 이 길고 험난한 평화의 길을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아산에서의 청일전쟁’에 대해 박성순 U1대 교수는 “청일 양국은 1885년 3월 천진조약을 맺고 조선에 양국 군사를 파견치 않기로 했다가, 1894년 동학혁명이 발생하자 조선은 청에 파병을 요청하고, 조선에 파병의 기회를 노리던 일본은 청의 파병을 부추겨 청이 파병하자 일본도 역시 조선에 파병을 실시했다. 이를 계기로 청국 함선과 아산의 풍도 앞바다에서 청과 일본 함대의 충돌이 일어나고 일본은 이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를 ‘풍도해전’이라 하며 조선에서 청일 전쟁의 도화선이 됐다”며 “온양온천은 왕실 온천으로 현재 온양관광호텔 일대에 왕이 온천을 위해 머무르는 행궁이 있었는데 일본은 이곳을 헐어버리고 호텔을 지어 일본인들의 온천휴양지로 바꾸어 버렸고, 신정호 저수지에 수상각을 지어 일본인들의 유원지로 만드는 등 청일전쟁의 상처는 아산에 있어서 치욕의 상처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일전쟁은 잊혀진 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을 사는 아산시민에게 청일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되어 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이 청일 전쟁이후 일본인에 의해 없어진 조선왕실의 행궁이며 오늘 우리가 주제로 삼고 있는 안중근의사의 유해가 묻혀 있는 뤼순과 무관치 않음을 상기하고 우리의 뼈아픈 역사에 대해 되새기며 오늘날 동북아의 현실 속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이 맹아의 싹을 틔워 동양의 영원한 평화와 번영이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고 강조했다.

 

 ‘청일전쟁의 물적 증거’에 주상령 초대관장은 “나의 고향 뤼순구가 아산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 대하고 있다. 뤼순구에서는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재난을 겪어서 세번이나 식민지가 됐다. 청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전대미문의 참상 뤼순 대학살을 하고 약2만명 가까운 중국 동포가 살해를 당했다. 현재, 중국 동포를 매장한 묘지-뤼순만충묘능원에서 전 중국 북양 해군의 주력 제원함의 후주포가 당당하게 있어서 사람들에게 비통한 굴욕과 항쟁의 과거 사실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제원함 후주포가 근대 중국과 동북아 역사의 증거다”며 “이런 제원함이 이후 러시아 군대가 배치한 수뢰에 부딪혀 외부의 폭발이 내부의 폭발을 야기해서 폭탄이 연속 폭발해 결국 바다 밑에 매장됐다가 78년이 지난 1982년 구경 150mm 후주포 한대와 구경 47mm 기관포 한대 그리고 닻 하나, 나침반, 펌프 등 유물을 인양하게 된다”며 제원함 후주포가 근대 주요한 전쟁인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두 전쟁을 직접 경험한 근대사의 비극의 증거물이라고 설명했다.

 

 김성태 이사장은 “뤼순과 아산은 청일전쟁이라는 동일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청일전쟁과 관련하여 역사적으로 알릴 수 있는 시설을 찾아보기가 어려운지”에 날카로운 질문으로 토론했다.

 

 ‘임진왜란 시기 아산지역 이순신 활동에 대한 소고’에 대해 노승석 소장은 “이순신은 임진년 새해 첫날부터 난중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두해 동안 남쪽에서 근무하느라 명절날 아산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 하지 못한 회한을 일기에 적었다. 어머니의 존재가 하늘같았기에 천지(天只)라는 표현을 햇고, 난중일기가 전쟁에 대한 일기인데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시작하고, 극진한 효자로서의 모습을 알게 해준다”며 이순신은 모친 사망에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나라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로 길을 떠나게 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산은 이순신의 선산이 있는 곳이자 어머니의 고향으로서 전란 중 이순신에게 항상 불굴의 의지를 지탱케 했던 그의 정신적인 본산이었다. 다른 지역은 전쟁의 승전을 기리지만 아산은 이순신의 충효의 정신을 직접 실천한 정신이 서린 곳이다. 효를 체험할 수 있는 고장이 아산이다. 건천동(서울)은 인격형성을 한 곳이고, 아산은 효를 실천한 곳이다. 아산에 효 체험 학습장을 운영하길 제안한다”고 말했다.

 

 노 소장의 주제발표에 대해 홍정모 교수는 “이순신의 아산 전입 이유, 백의종군 기간에 아산에 머무는 동안의 모습이 7년 전쟁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보는 이유”에 토론했다.

 

 다음일정으로 23일 U1대를 방문해 행사를 주최한 U1대 동북아연구소를 둘러보고 간담회를 가진 후, 청일전쟁의 시발점이 된 아산 영인면 백석포리(일본 주둔지)와 일본군이 승리하면서 자신들이 세운 아산일청전적기념비(8.15광복 이후 주민들에 의해 철거)가 있었던 영인면 아산리 아산교회 등을 방문, 지난 청일전쟁의 아픔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으며, 아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외암민속마을과 신정호수공원 등을 함께 관람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박성순 충무행복포럼 상임대표(U1대 석좌교수)는 “이번 학술대회는 충무공 이순신, 안중근 의사의 정신을 후세에 알리고 안중근 의사 유해 찾기 운동을 응원하자는 뜻에서 3박4일의 일정으로 마련했다”며 “심포지엄에 더 많은 아산시민들이 함께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아산시민들도 치열했던 독립 운동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해 우리나라에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역사문제 대응과 애국심 고취 등의 교육이 더욱 펼쳐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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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25 [08:36]  최종편집: ⓒ C뉴스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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