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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4)
황진이-사랑과 언어의 연금술사(4)
안종은
<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紅顔)을 어듸 두고 백골만 뭇쳣난다
잔(盞) 잡아 권하리 업스니 글을 슬허하노라)

(푸른 풀 우거진 골짜기에 자는 거냐 누워 있는 것이냐?
고운 얼굴은 어디에 두고 백골만 묻혀있느냐?
잔을 잡아 권할 네가 없으니 슬플 따름이구나!)

 
 황진이의 시조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시조 한 수만큼은 어렵지 않게 흥얼거릴 정도로 누구나 알고 있는 작품이다. 황진이 아니라도 사후에 한 남성으로부터 이토록 곡진(曲盡)한 조시(弔試)를 얻을 수 있는 여인이라면, 저승에서라도 필경 영혼이 행복해하지 않을까?
 
 이 작품은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1587)가 정6품 외직 무관인 평안평사(平安評事)를 제수 받고 임지로 부임하면서 송도에 들려 황진이를 찾았으나 벌써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녀의 무덤에 들려 제를 지내고 읊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선 건국부터 숙종 때까지의 주요 인물 2,065명의 행적을 기록한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에 “공은 타고난 재주가 뛰어나 날마다 수천마디의 말을 외웠으며 문장이 호탕하고 특히 시를 잘 지었다. 동서붕당(東西朋黨)의 의논이 일어나 선비들이 앞을 다투어 편을 가르었으나, 자신의 멋대로 행동하고 무리에 가담하지 않았으며 몸을 낮추어 사람을 섬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벼슬이 현달하지 못하였다. 법도(法度) 밖의 사람이라 하여 모든 선비들이 사귀기를 꺼려하였으나 그의 시와 문장은 서로 취하였다”
 
 조선시대 최고의 풍류랑(風流浪)이었던 그는, 요즘 표현으론 철저한 아웃사이더였으며 타고난 스타일리스트였다. 젊은 시절부터 전국의 명산과 명승지를 오유(遨遊)하였으며, 안 다녀본 기루(妓樓)가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시절을 보내다 22세 되던 해 속리산에 들어가 대곡(大谷) ‘성운(成運)’에게 사사하였으며, ‘이이’, ‘허균’, ‘양사언’ 등과 교우하였다. 39세에 요절하기까지 당대 최고의 기녀인 ‘한우(寒雨)’, ‘일지매(一枝梅)’ 등 수 많은 여인들과 핑크색 정화(情話)를 남겼으며, 그의 문집 ‘백호집(白湖集)’에 한시 700여 수, 가전체소설 ‘수성지(愁城誌)’, ‘화사(花史: 남성중(南聖重) 또는 노긍(盧兢)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음)’,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이 전한다.
 
 사대부의 신분으로 벼슬을 제수 받고 부임지로 가는 도중에, 일개 기녀의 묘에 들려 조문(弔問)한다는 것은 당시 선비사회가 가식과 위선의 오류에 물들어 붕당을 이루지 않으면 개인 신상에 어떠한 위해나 위험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임제도 익히 잘 알고 있었겠지만, 이를 무릅쓰고 아무 거리낌 없는 파격적인 행보를 내딛었던 그의 진면목이 임종에 이르러 자식들에게 유언한 내용에 여실히 나타난다.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임제가 병이 들어 장차 죽게 되자 여러 아들들이 슬피 우니 그가 말하길 “사해(四海)안의 모든 나라가 제(帝)를 칭하지 않는 나라가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예로부터 그러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누방(陋邦)에 사는 신세로서 죽음을 애석히 여길 것이 있겠느냐? 곡을 하지 말라” 라고 유언했으며, 평소에도 말하길 “내가 만약 오대(五代)나 육조(六朝)같은 시대를 만났다면 돌려가면서 하는 천자(天子) 쯤은 의당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였다. 그래서 한 세상의 웃음거리로 전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천(北天)이 맑다커늘 우장(雨裝) 업시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 온다
오늘은 찬비 마자시니 얼어 잘가 하노라>

(북녘 하늘이 맑기에 우장도 안가지고 길을 나섰더니
산에는 눈이 오고 길에는 찬비가 오는구나
오늘은 이래저래 찬비를 맞았으니 얼어서 자야겠구나)

 
 세상만사 너저분하지만 다만 시가(詩歌)와 미녀는 사랑할만하다 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할만큼 풍류한량이었으며,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답게 임제에게는 발길 닿는 곳마다  시와 술과 여인, 음률이 동행하였다. 전해오는 문헌상의 기록이나 초상화가 없어 그의 풍모가 어떠한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의 가문 구성원 신분이 주로 무관직 벼슬살이를 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요즘 표현으로 얼짱 까지는 모르더라도 몸짱은 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바, 그에 더하여 시문(詩文)에 막힘이 없고 악기(거문고) 잘 다루는데다 노래까지 잘 부르는 호방한 선비였으니 당시 기녀들의 눈높이를 충족함은 물론 연모의 대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지 않았을까.
 
 당시 ‘한우(寒雨)’라는 유명한 기녀가 있었는데, 으뜸 기녀로서 반드시 구비해야 할 재색(才色)을 겸비하였고 시서(詩書)와 음률에 정통하였으며 노래 또한 뛰어났다. 그녀에 대한 간단한 기록이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에 ‘규수(閨秀)’, ‘해동가요(海東歌謠)’에는 ‘명기구인(名妓九人)’ 이라고 전하는 것이 전부다. 고수들의 만남답게 술잔이 여러순배 돌고, 시를 논하며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에 흥취와 취기가 고조될 무렵, 임제가 즉흥적으로 일명 ‘한우가(寒雨歌)’라 하는 시조 한 수를 읊었다.
 
<어이 얼어 잘이, 므스 일 얼어 잘이
원앙침(鴛鴦枕) 비취금(翡翠衾)을 어듸 두고 얼어 자리
오늘은 찬비 마자시니 녹아 잘까 하노라>

(어이하여 얼어(차게) 주무시렵니까, 무슨 일로 얼어 주무시렵니까
원앙과 비취 이불을 어디에 두고 얼어 주무시려 합니까
오늘은 찬비(寒雨)를 맞았으니(만났으니) 따듯하게 주무시고 가시지요.)

 
 임제의 은근한 유혹에 한우가 가야금을 연주하며 화답한 노래가 유일하게 전하는 이 시조한 수다. 이 짧은 형식의 노래에 이처럼 현란한 수사(修辭)를 구사하는 솜씨에 사뭇 탄성이 절로 나온다. ‘찬비’는 기녀 ‘한우(寒雨)’를 은유한 것이며, ‘마자시니’는 비를 맞았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맞이하다(迎)’의 은유적 성격을 띤다. ‘얼어 잘까’는 비를 맞아 얼어 잔다는 뜻보다 ‘홀로 자는 외로움’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한우의 화답은 더욱 열정적이다. ‘무엇 때문에 찬 이불 속에서 혼자 주무시렵니까, 원앙금침 이불 속에서 저와 함께 따듯하게 주무시지’.
 
 ‘진본청구영언(珍本靑丘永言)’에 임제와 한우의 사랑노래에 관한 기록이 전한다.
 .......<略> 이름난 기생 한우를 보고 이 노래를 불렀다. 그날 밤 한우와 동침하였다.
 

▲ 안종은     © C뉴스041
 <필자 - 안종은>
 
- 아산시 좌부동 초원아파트 거주
- 온양아산신문 <현대시평>1년 연재
- 용화동 소재 아나고구이 전문점<통영바다>에서
  『장자』「양생주편」‘포정해우’에 나오는
   ‘긍경(肯경)의 도(道)’를 얻기 위하여 ‘포정(庖丁)의
   칼’을 빌려 아나고를 가르고 있음.
 

 

 

C뉴스041 www.cnews04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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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7/25 [23:34]  최종편집: ⓒ C뉴스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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