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전국 대전 세종  충남  천안  아산  홍성  예산  청양  인사  선거  기고  프로농구배구
편집 2017.09.20 [21:05]
검색
라이브폴
진행중인 라이브폴이 없습니다.
 
커뮤니티
기사 제보
명예기자 기사등록
독자게시판
C뉴스 드림봉사단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5)
황진이-사랑과 언어의 연금술사(5)
안종은
<마음이 어린 후(後)니 하난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萬重雲山)에 어내 님 오리마난
지난 닢 부난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

 
(마음이 어리석은 후이니 하는 일마다 모두 어리석구나
첩첩한 깊은 산중에 어느 누가 나를 찾아 오겠는가마는
낙엽 지는 소리와 부는 바람 소리에 행여 네가 오는 것인가 하고 여기는구나)

 
 독자적인 주기론(主氣論)의 선구자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의 작품이라 전한다. 어둠 속에 홀로 앉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잘 그려진 한 폭의 수묵화처럼 진솔하게 담고 있다. 학문적 완성을 이룬 도학자이기 전에, 끊임없이 샘솟는 인간 본능의 그리움에 속절없어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구름 가득한 첩첩산중의 장애 때문에 그리운 사람이 찾아올 수  없을거라고 애써 자위해보지만, 그래도 행여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나 바람소리가 마치 임의 발자국 소리가 아닌가 하고 바라는 간절함과 안타까움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서경덕. 자는 가구(可久), 호는 복재(復齋), 화담(花潭)이며 스승 없이 독학하여 역학 경서는 물론 천문지리에도 능통한 당대의 대석학. 과거나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개성 동문 밖 오관산(五冠山)에 있는 연못인 화담에 서실을 짓고 평생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박순, 허엽(허균의 아버지), 이지함, 박지화, 홍인우, 남언경, 이구 등이 그의 문하생이며 이들이 조선유학사에서 최초로 형성된 학파라 볼 수 있는 화담학파를 이루었다. 임종에 이르러 한 제자가 “선생님 오늘 기분이 어떠십니까” 하고 묻자, “삶과 죽음의 이치를 안 지 이미 오래이니 편안할 뿐이다”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허균이 자신의 호 ‘성소(惺所)’와 ‘장독 뚜껑을 덮는다’는 겸손의 뜻을 지닌 ‘부부(부瓿)’를 결합하여 ‘성소부부고(惺所부瓿藁)’라는 4부 26권의 방대한 저서를 남겼는데 아산과 관련된 기록으로, 18권 ‘조관기행(漕官紀行)’편에 1601년(선조34) 6월에 전운판관(轉運判官)을 제수받아 현재의 인주면 ‘공세리곳창’에서 세금으로 거둔 쌀 4천 2백석을 배12척에 나누어 실어 보냈다는 기록과, 8월 13일에 아산의 명신 동지(同知) 홍가신(洪可臣)을 찾아 뵙고 “즐거움이 지극하여 종일토록 모시고 이야기를 하니 가슴이 상쾌해지며 비루한 생각이 싹 가시는 듯 하였다” 라고 기록하였다..
 
 26권 설부(說部) ‘도문대작(屠門大嚼)’ 편은 전국 팔도의 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것으로 서문에 “내가 죄를 지어 귀양살이를 하게 되니 지난날에 먹었던 음식이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다” 라고 기술하였다.  ‘도문대작’의 뜻은 ‘고기를 먹고 싶으나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도문(도살장의 문)이나 바라보고 대작(질겅질겅 씹는다)하며 자위한다’ 라는 해학이 담겨 있다. 당시 사회의 모순을 통렬하게 비판한 ‘홍길동전’의 저자이며,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을 했던 시대의 이단아답게 의혹투성이의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했던 허균은, 온양온양군)의 특산물로 ‘조홍시(早紅柹 9월 하순에 수확하는 조생종 감)’를 꼽고 ‘붉고 달으며 물기가 많다. 그 밖에는 모두 이만 못하다’ 라고 하였으며, 아산(아산현)의 특산물로는 황석어(黃石魚 노란색깔을 띤 참조기)를 언급하며 ‘서해바다 어디에나 있지만 아산의 것이 가장 좋은데 삶으면 비린내가 안 난다’ 라고 기록하였다.
 
 황진이 관련 기록이 24권 ‘성옹지소록 하(惺翁識小錄 下)’ 편에 보이는데, ‘진랑(황진이)은 일찍이 산수를 유람하면서 풍악(楓岳 금강산의 별칭)에서 태백산과 지리산을 지나 금성(나주)에 오니, 고을 원이 절도사와 함께 한창 잔치를 벌이는데 풍악과 기생이 좌석에 가득하였다. 진랑은 헤어진 옷에다 때묻은 얼굴로 바로 그 좌석에 끼어 앉아 태연스레 이를 잡으며 노래하고, 거문고를 타되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으니 여러 기생이 기가 죽었다’.
 
 ‘평생에 화담의 사람됨을 사모하여 반드시 거문고와 술을 가지고 화담의 농막에 가서 한껏 즐긴 다음에 떠나갔다. 매양 말하기를 “지족선사가 30년을 면벽하여 수행했으나 내가 그의 지조를 꺽었다. 오직 화담 선생은 여러 해를 가깝게 지냈지만 끝내 관계하지 않았으니 참으로 성인이다”
 
 이 책에 ‘송도삼절(松都三絶)’의 유래가 전하는데, 화담에게 가서 말하길 “송도에 삼절(뛰어난 세가지)이 있습니다” 하니 화담이 “무엇무엇인가” 묻자 “박연폭포와 선생님과 소인입니다” 하니 화담이 웃었다. 이것이 비록 농담이기는 하나 그럴듯한 말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엿관대
월침삼경(月枕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닙 소릐야 낸들 어이 하리오>

 
(내가 언제 신의가 없어서 임을 언제라도 속인 적이 있는지요?
달은 기울고 밤은 깊어 삼경이 되도록 저를 찾아오실 뜻이 전혀 없으시나요?
가을 바람에 우수수 낙엽지는 소리야 전들 어찌하란 말씀입니까?)

 
 임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건만 마음조려 아무리 기다려 봐도, 오시려는 뜻(기척)이 전혀 없는 임을 향한 애절한 그리움과 원망의 정서를 황진이 특유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일각여삼추처럼 초조하게 임을 기다리는 여심은 낙엽 지는 소리마저도 혹시는 임이 오시는 인기척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로 그리움의 절정에 이르러 독자로 하여금 가슴 저리게 한다.
 
 이 시조는 황진이가 서경덕의 시조에 화답(和答)한 것이라 전하는데, ‘동가선(東歌選 조선후기 년대, 편자 미상의 가(歌)집으로 시조 235수 수록. 백경현 편자설도 있음)’에 ‘황진이가 서경덕과 약속한 밤에 찾아갔더니, 서경덕이 초연히 어둠 속에 홀로 앉아 노래를 부르기에 이 노래를 지어 그 노래에 화답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고전문학 작품인 고려가요, 가사, 시조 등은 노래로 불린 것이기 때문에 입으로만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려말 ‘이제현’의 ‘소악부(小樂府)’ 이래 우리의 주요 고전작품들이 인멸되어 가는 것을 안타까이 여긴 여러 문인 학자들이 한시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였으니,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시,서,화의 대가였던 ‘신위(申緯 1769~1845)’는 평소 기억하고 있던 시조 40수를 한시 칠언절구 형식으로 한역하여 ‘소악부’를 남겼다. 황진이 작품으로는 3수가 수록되어 있으며, 이 작품을 다음과 같이 한역하였다.
 
<寡信何曾瞞著麽 과신하증만저마
月沉無信夜經過 월침무신야경과
颯然響地吾何與 삽연향지오하여
原是秋風落葉多 원시추풍낙엽다>

 
 사랑의 감정은 일상(日常)은 아니지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건이다. 하지만 그 사건은 당사자에게 있어서는 내면에 잠들어있던 감성을 고양시켜 특별한 느낌을 체험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가 시인이 된다는 경구(警句)처럼,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소리, 아무렇게나 물든 가을 단풍, 심지어는 텅 빈 하늘 등의 자연현상은 물론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 그리고 우주와의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스승과 제자로서의 정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이성으로서의 감정으로 전이되었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듯이, 화담 또한 도학자이기 전에 한 남성으로서의 본능적 감정은 숨길 수 없는 법, 무슨 일로 발걸음이 뜸해진 제자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적이 놀라 ‘어리석은 마음’ 이라고 자책도 하지만, 적막한 어둠속에 앉아 문풍지를 울리는 바람소리와 낙엽 지는 소리에도 귀 기울여 기다리는 절실함은 애달픔 보다 오히려 아름답다.
 
 뉘 말했던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통은 그리움이라고!
 

▲ 안종은     © C뉴스041
 <필자 - 안종은>
 
- 아산시 좌부동 초원아파트 거주
- 온양아산신문 <현대시평>1년 연재
- 용화동 소재 아나고구이 전문점<통영바다>에서
  『장자』「양생주편」‘포정해우’에 나오는
   ‘긍경(肯경)의 도(道)’를 얻기 위하여 ‘포정(庖丁)의
   칼’을 빌려 아나고를 가르고 있음.
 

 

 

C뉴스041 www.cnews041.com


 
광고
광고
기사입력: 2012/08/02 [12:44]  최종편집: ⓒ C뉴스041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23)/ 안종은 2013/02/26/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22)/ 안종은 2013/01/25/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21)/ 안종은 2013/01/08/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20)/ 안종은 2012/12/21/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9)/ 안종은 2012/12/07/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8)/ 안종은 2012/12/01/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7)/ 안종은 2012/11/24/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6) / 안종은 2012/11/07/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5)/ 안종은 2012/10/26/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4) / 안종은 2012/10/19/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3)/ 안종은 2012/10/12/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2)/ 안종은 2012/10/02/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11)/ 안종은 2012/09/25/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10)/ 안종은 2012/09/12/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9)/ 안종은 2012/09/07/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8)/ 안종은 2012/08/29/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7)/ 안종은 2012/08/16/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6)/ 안종은 2012/08/09/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5)/ 안종은 2012/08/02/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4)/ 안종은 2012/07/25/
광고 제호: C뉴스041 / 발행ㆍ편집인: 이정준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충남아 00022 / 등록일 : 2007년 1월 15일
발행소: 충남 아산시 시민로 440번길 10, 201(온천동, 제일빌딩) / 전화: 041-534-0411 / 창간기념일 3월 3일
사업자등록번호: 311-02-29537 / 계좌: 농협 426-01-018594
메일 : munhak21@hanafos.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정준
Copyright ⓒ 2006 C뉴스041. All rights reserved / Contact munhak21@hanafos.com for more information.
C뉴스041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