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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6)
황진이-사랑과 언어의 연금술사(6)
안종은
月下梧桐盡 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 상중야국황: 찬서리 속에서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네
樓高天一尺 누고천일척: 누대는 높아 하늘에 닿았는데
人醉酒千觴 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 류수화금냉: 흐르는 물은 거문고 소리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 매화입적향: 매화곡은 피리 소리에 담겨 향기롭구나
明朝相別後 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서로 이별 후에는
情與碧波長 정여벽파장: 사무치는 연모의 정은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呈別蘇陽谷世讓 정별소양곡세양’. ‘양곡 소세양과 이별하며 드린다’ 라는 작품이다. 인간사회자정리라 했던가? 한 달 기한으로 개성에 머물면서, 박연폭포 등 개성의 유수한 명승지를 함께 노닐며 술과 더불어 시와 음률을 논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내일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이별을 감내(堪耐)해야 하는 두 연인의 마지막 술자리. 오동잎 지고 찬서리 맞은 들국화가 노랗게 피어있는 늦가을 밤, 휘영청 달빛 가득히 내려앉은 누대에 올라, 아무 말 없이 연신 서로의 술잔을 채워가며 이별의 서러움을 달래려는 풍경은, 시공을 초월하여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애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소세양 1486~1562’, 자는 언겸(彦謙)이며 호는 양곡. 전북 익산(益山)에 있는 그의 신도비(神道碑)에, 공은 태어나면서 빼어나 7~8세에 이미 학문을 좋아하여 날로 진전하니 스승을 번거롭지 않게 하였으며, 시구(詩句)가 사람을 놀라게 하였고 송설체(원나라 조맹부의 서체)를 체득하였다. 육조판서와 대제학을 역임하였으며, 필명이 중국에 까지 알려진 대학자. ‘조선왕조실록’ 명종 17년(1562) 11월 30일 기록에 있는 그의 졸기에, ‘전 좌찬성 소세양이 졸(卒)하였다. 훌륭한 재주가 있어 글씨도 잘 쓰고 시문에도 능하여 일찍이 대제학이 되었으나, 심술이 바르지 않아 공론(公論)의 배척을 받아 물러나 익산에 가서 산지 거의 20여 년 만에 죽었다’. 공론의 배척이란 당시 집권파인 윤임 일파의 탄핵을 말하며, 명종 즉위 후 을사사화로 인하여 윤임 일파가 몰락하자 재기용되어 좌찬성에 올랐으나 곧 사직하고 익산에 은퇴하였다. 사후 8년이 지난 1570년에 그의 문집인 ‘양곡집’이 발간되었는데, 황진이 관련 기록은 단 한 줄도 찾아 볼 수 없다. 그가 황진이와 관계된 기록을 남기기나 한 것인지, 그의 후손들이 유고(遺稿)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개 기녀와의 로맨스 따위의 기록물은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낸 그의 명성에 누가 될까 저어하여 의도적으로 누락했는지 조차 알 수 없으니 양곡집 마지막 장을 닫는 뒷맛은 이래저래 고약스럽다.
 
 ‘天一尺’은 하늘과 한 자 사이로 가까운 거리를 뜻하고, ‘酒千觴’은 천 번의 술잔을 주고받을 만큼 많은 술을 마셨다는 뜻이다. ‘梅花入笛香’은 피리소리에 잠긴 매화향기로 해석하면, 오동잎 지고 국화가 피는 늦가을과 매화가 피는 이른 봄과는 시간적 불일치가 되기 때문에,조선 후기로 추정되는 편자 및 출판 년대 미상의 악보인 ‘삼죽금보(三竹琴譜)’에 ‘매화곡(梅花曲)’이 실려 있는 것으로 보아 독립된 악곡의 한 형태로 봄이 타당하고. ‘情與碧波長’은 임 향한 연모의 정이 푸른 물거품 되네 라고 해석해도 좋겠다.
 
 황진이와 소세양과의 한 달 동안의 사랑이야기가 ‘임방(任埅 1640~1724)’이 편찬한 시화집 ‘수촌만록(水村蔓錄)’과 ‘홍중인(洪重寅 1677~1752)’이 편찬한 시화집 ‘동국시화휘성(東國詩話彙成)’에 이 작품과 함께 일화가 전하는데 내용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략 이러하다. 소세양이 젊었을 적부터 매양 말하길 ‘색(色)에 미혹되는 인간은 사내대장부가 아니다. 내가 들으니 송도의 기생 황진이가 재주와 인물이 뛰어났다고 하나, 나는 황진이와 더불어 30일간 동숙하고는 미련 없이 끊고 돌아오겠다. 만약 하루라도 더 머물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하고는 송도에 갔다. 황진이를 보니 과히 소문과 같은지라 한 달을 기한으로 머물며 사귀었다. 내일이면 기한이 되어 이별을 목전에 둔 밤, 황진이와 함께 남루에 올라 주연을 즐기는 가운데 황진이가 아무런 표정 없이 이 시 한수를 써서 주니 이를 읽고 감탄하며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며 하루 더 머물렀다.
 
 문헌상에 나타난 황진이의 연인들은 적지 않다. ‘부운거사’, ‘김경한’, ‘벽계수’, ‘이사종’, ‘소세양’이 있으며, 마음속으로 사모하여 스승으로 모신 ‘서화담’과 황진이의 유혹에 파계한 ‘지족선사’가 있다. 이덕형의 ‘송도기이’에 ‘진랑(황진이) 비록 창기로 있기는 했지만 성품이 고결하여 번화하고 화려한 것을 일삼지 않았다. 관부(官府)의 주석(酒席)이라 해도 그저 빗질과 세수만 하고 나갈 뿐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또 방탕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시정잡배들은 비록 천금을 준다해도 돌아다보지 않았다. 선비들과 놀기를 좋아하고 당시(唐詩) 읽기를 즐겨했다’ 라는 기록으로 보아 황진이의 기루에는 언필칭 사류,한량(士類 閑良)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필자의 소견으론 문헌상에 기록된 황진이 최고의 연인은 양곡 소세양이라고 보는 바, 이는 황진이가 선비들과 놀기를 좋아했고 당시 읽기를 즐겼다는 기록에 가장 부합되는 인물이 소세양이며, 황진이가 추구했던 정신세계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詩書 등 학문적 소양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6년간 계약동거를 했던 이사종은 당대의 명창으로 황진이의 예술혼을 고양시키는데 적임자였으며, 백호 임제가 황진이와 살아 만났더라면아마도 우리나라의 고전문학사가 한층 풍요했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해바라기’가 부른 ‘모두가 사랑이예요’의 ‘사랑하는 사람도 많구요, 사랑해주는 사람도 많았어요’ 라는 노랫말처럼, 모든 남성의 연인 황진이에겐 굳이 정복의 대상으로(지족선사가 그랬고 서화담 또한 처음엔 그리 여겼음) 삼지 않아도, 또한 송도를 벗어나 사랑을 구걸하지 않아도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못 이룰 바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처음이 있어 끝이 있는 것처럼, 이별은 인간의 능력 밖에 머물러 존재하는 영원한 화두이기에 죽음으로라도  감수해야 하는 것을........
 
<靑山은 내 뜻이오 綠水는 임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을 못 니져 우러 예어 가는고>

(청산은 변함 없는 내 마음과 같고 흐르는 시냇물은 임의 정과 같다
시냇물이야 흘러가면 그만이지만 청산이야 변할 수가 있겠는가
흐르는 시냇물도 청산을 못 잊어서 울면서 흘러가는구나!)

 
 임에 대한 변함 없는 사랑을 자연물에 비유하여 노래한 작품이다. 변치 않는 존재인 ‘청산’은 화자인 황진이 자신을, 변화하는 존재인 ‘녹수’는 떠나가면 그만인 ‘임’을 상징한다. 임에 대한 자신의 영원한 사랑을 강조하면서 임도 나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함께 담고 있다. ‘근화악부(槿花樂府)’와 ‘대동풍아(大東風雅)’ 두 가집에만 전하며, 작가도 근화악보에는 무명씨로 되어 있으며 대동풍아에는 황진이로 되어 있다. 내용도 약간 달라 근화악부에는 ‘내 정은 청산이요 임의 정은 녹수로다’ 라고 기록 되어 있으며, 대동풍아에는 ‘청산은 내 뜻이오 녹수는 임의 정’ 이라고 되어 있다. 근화악부는 정조3년(1799)이나 헌종5년(1839)에 편찬된 작자 미상의 시조가사집이며, 대동풍아는 1908년에 간행한 시조집으로 작가의 표기가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아 이 작품을 황진이의 것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
 

▲ 안종은     © C뉴스041
 <필자 - 안종은>
 
- 아산시 좌부동 초원아파트 거주
- 온양아산신문 <현대시평>1년 연재
- 용화동 소재 아나고구이 전문점<통영바다>에서
  『장자』「양생주편」‘포정해우’에 나오는
   ‘긍경(肯경)의 도(道)’를 얻기 위하여 ‘포정(庖丁)의
   칼’을 빌려 아나고를 가르고 있음.
 

 

 

C뉴스041 www.cnews04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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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8/09 [15:19]  최종편집: ⓒ C뉴스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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