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전국 대전 세종  충남  천안  아산  홍성  예산  청양  인사  선거  기고  프로농구배구
편집 2017.11.22 [10:52]
검색
라이브폴
진행중인 라이브폴이 없습니다.
 
커뮤니티
기사 제보
명예기자 기사등록
독자게시판
C뉴스 드림봉사단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7)
황진이-사랑과 언어의 연금술사(7)
안종은
<山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안이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쏘냐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안이 오노매라>
(산은 옛날의 그 산이지만 물은 옛날의 물이 아니로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흘러가니 옛날의 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람도 물과 같아서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구나)

 
 산은 옛 모습과 변함이 없건만, 흘러가는 물은 이미 어제의 그 물이 아니다. 화자인 자신의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변함없는 산처럼 일편단심인데 반하여, 밤낮으로 흘러 변하는 물은 한때 사랑하다 돌아서 떠나버린 임의 마음일 터. 변함이 없는 산과 흘러가는 물, 물과 같이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 인걸을 대조시켜 인생무상이라는 철학적 사유(思惟)의 감정으로 확산시키는 뛰어난 작품이다. 황진이가 흠모하여 일생동안 스승으로 받든 서화담의 죽음을 한탄하여 지은 작품이라는 설도 있으나 출처를 찾을 수 없다.
 
 황진이가 기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황진사의 서녀’, ‘맹인의 자식’ 설 등 모호한 출생으로 인한 정체성 상실감에서 비롯되었으리라 여겨진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안락한 가정생활을 영위함은 거개의 인간이 추구하는 당연지사이거늘, 당시 사회에서 기녀라는 특수한 사회적 신분의 제약을 일찍이 천재라는 상찬을 들었던 황진이가 모르진 않았을 터 임에도 굳이 기녀의 길을 선택한 것은, 출생의 모호함에서 오는 자신의 정체성과 연관된 황진이 내면의 문제를 제외하면 달리 설명이 어렵다. 그녀 정도라면 재산 많은 토호 나부랭이나 유수한명망가의 첩실 자리는 어렵지 않게 보장되어 한평생 호의호식하며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의 남성 편력 또한 신분의 상처를 홀로 다스려야 하는 보상심리의 표출로 보아야겠다. 그러나 그녀는 본시 다정다감한 여인이기에 사랑하는 임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표현을 그녀의 작품 전반에 걸쳐 한 뜸 한 뜸 수를 놓듯 정성을 다하여 아로새겼다.
 
 그녀가 금강산을 지나 태백산과 지리산을 거쳐 금성(나주)에 가서 고을 원의 주연에 끼어 앉아 당당한 행동으로 여러 기생의 기를 죽였다 라는 허균의 성옹지소록 기록은 이미 언급 하였고, 유몽인의 어우야담에는 아래와 같은 기록이 전한다.
 
 황진이가 금강산이 천하의 명산이라는 말을 듣고는 찾아가 맑은 흥취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동행할 사람이 없었다. 당시 이생(李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재상의 아들이었다. 성격이 호탕하고 소탈해서 명승지 유람을 함께 갈만하다고 여겨 그에게 말했다. “저는 중국 사람도 고려국에서 태어나 금강산 한번 보는 것을 소원한다고 들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 사람으로 태어나고 자라 신선이 산다는 산을 지척에 두고 그 진면목을 보지 못한대서야 되겠는지요?” 이생의 동의를 얻어 그로 하여금 하인 없이 베옷에 초립을 쓰고 양식 보따리를 짊어지게 했다. 자신은 ‘송라(宋蘿 소나무에 기생하는 지의류로 엮어 만든 여승이 쓰는 모자)’를 쓰고 베적삼에 무명치마를 입고서 대지팡이와 짚신을 신고 뒤를 따라 나섰다. 둘은 금강산에 들어가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러 절에서 걸식하고 때로는 자신의 몸을 팔아 승려에게 양식을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생은 이를 탓하지 않았다. 금강산 유람을 마치고 이생과 헤어져 다시 정처 없는 유랑의 길로 나섰다.
 
 당시로서는 사대부의 신분으로도 금강산 여행은 쉽지 않았다. 그나마 그들은 하인의 시중을 받아 말을 타고 가서는 금강산의 명소들은 주로 스님들을 가마 메우고 유람하는 경우가, 그들이 남긴 금강산유람기에 전한다. 하물며 여자의 몸으로 기한 없는 도보 여행을, 그것도 금강산은 물론 백두대간을 지나 지리산 등의 전국 산천을 유람했다는 것은 황진이가 유일한 기록일 것이며, 양식이 떨어지면 몸을 팔아 유람 비용을 충당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황진이의 유람은 그녀가 기녀로서의 전성기 시절을 지난 후,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있었던 것으로 필자는 추측한다. 속된 말로 없이는 죽고 못 살 것 같았던 문헌에 기록된 그녀의 연인들마저 모두 떠나가고, 지나온 삶을 반추하면 세속적 모든 행위가 부질없다는 것을 자각한 뒤 철학적 구원행위의 한 방편으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古寺蕭然傍御溝 고사소연방어구: 옛 절은 쓸쓸히 대궐 안에서 흘러나오는 개천 옆에 있고
夕陽喬木使人愁 석양교목사인수: 석양을 받고 서있는 키 큰 나무들 우울하구나
煙霞冷落殘僧夢 연하냉락잔승몽: 태평세월은 스러져 스님 꿈에만 남아있고
歲月崢嶸破塔頭 세월쟁영파탑두: 세월만 첩첩이 깨진 탑머리에 쌓여있다
黃鳳羽歸飛鳥雀 황봉우귀비조작: 봉황새 어디로 날아가고  멧새들만 오락가락
杜鵑花落牧羊牛 두견화락목양우: 두견화 피었던 자리에는 풀 뜯는 말과 양
神菘憶得繁華日 신숭억득번화일: 번화하던 그 당시야 뉘 알았으리오
豈意如今春似秋 개의여금춘사추: 봄이건만 가을 같은 오늘날 일 줄이야!
 
 송악산 남쪽 기슭 고려의 궁궐이 있었던 옛 성터를 바라보며 애상적인 목소리로 화자의 감상을 노래한 ‘만월대회고(滿月臺懷古)’라는 작품이다. 기록에는 이미 1361년(공민왕 10)에 불에 타서 궁궐의 웅장하고 아름답던 전각들은 소실된 상태였다.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잡초 무성한 성터를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은 무상함과 애틋함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정서가 집약되어 드러낸 부분이 마지막 구절 ‘봄이건만 가을 같은 오늘’이라는 어조에 잘 나타나 있다. 만물이 생동하는 환희의 계절 봄임에도 불구하고 옛 영화의 상징물인 궁궐의 전각들이 사라진 터에 주춧돌과 깨어진 탑머리만 남아 있는 쇠락한 만월대를 마주하기에 화자는 역사와 세월에 대한 무상함을 느낀다. 송도삼절의 하나로 ‘박연폭포’를 지목한 황진이의 고향 송도에 대한 애정은, 현전하는 그녀의 한시 7~8수 중 ‘만월대회고’, ‘박연폭포’, ‘송도’ 등 3수나 되는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기녀의 신분으로 한 시절 세상의 뭇남성을 쥐락펴락했지만, 자신의 신분적 한계로 인하여 평생을 함께할 수 는 없었다. 그녀라고 해서 여염의 규수처럼 한 지아비만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토끼 같은 자식 낳아 백년해로 하고픈 소박한 꿈조차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리되기엔 그녀의 타고난 재주와 경국의 미색은 물론, 어찌해도 끊어낼 수 없는 모호한 출생의 악연은 그녀로 하여금 봉건적 윤리의 가치관이 지배했던 당시 사회의 질곡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비상구였는지도 모르겠다.
 
 법적으로는 일부일처제를 표방했지만, 여성에게는 칠거지악이나 삼종지도, 과부개가금지 등 혹독한 윤리의 굴레를 씌우고 자신들은 축첩, 기방출입 등 온갖 외입할 수 있는 제도나
장치들을 구비했던 허위와 위선의 남근중심주의를 조롱하고 폭로도 해보았지만, 그녀도 신비한 사랑의 감정 앞에는 여느 여인과 매한가지였음을 그녀가 남긴 작품들은 크게 말하고 있다. 
 
 성적인 존재로서의 ‘해어화’로 일생을 보내야했던 뭇 남성의 연인 황진이! 당대의 석학이나 예인들과 신분이나 성의 경계를 넘어 각자 한 자연인으로서 교류하며, 자신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의 주체가 되기를 누구보다 갈망했기에 우리역사에 영원히 남을 자랑스런 웅녀의 딸이다.
 
 * 7부작으로 황진이 연재를 마치고, 다음부터 조선 7대왕 세조(수양대군)의 왕후였으며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정희왕후 ㅡ 철녀지존 온양에서 지다>편을 연재합니다.
 

▲ 안종은     © C뉴스041
 <필자 - 안종은>
 
- 아산시 좌부동 초원아파트 거주
- 온양아산신문 <현대시평>1년 연재
- 용화동 소재 아나고구이 전문점<통영바다>에서
  『장자』「양생주편」‘포정해우’에 나오는
   ‘긍경(肯경)의 도(道)’를 얻기 위하여 ‘포정(庖丁)의
   칼’을 빌려 아나고를 가르고 있음.
 

 

 

C뉴스041 www.cnews041.com


 
광고
광고
기사입력: 2012/08/16 [17:49]  최종편집: ⓒ C뉴스041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23)/ 안종은 2013/02/26/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22)/ 안종은 2013/01/25/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21)/ 안종은 2013/01/08/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20)/ 안종은 2012/12/21/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9)/ 안종은 2012/12/07/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8)/ 안종은 2012/12/01/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7)/ 안종은 2012/11/24/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6) / 안종은 2012/11/07/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5)/ 안종은 2012/10/26/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4) / 안종은 2012/10/19/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3)/ 안종은 2012/10/12/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12)/ 안종은 2012/10/02/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11)/ 안종은 2012/09/25/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10)/ 안종은 2012/09/12/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9)/ 안종은 2012/09/07/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8)/ 안종은 2012/08/29/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7)/ 안종은 2012/08/16/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6)/ 안종은 2012/08/09/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5)/ 안종은 2012/08/02/
[웅녀의 딸들] 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4)/ 안종은 2012/07/25/
광고 제호: C뉴스041 / 발행ㆍ편집인: 이정준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충남아 00022 / 등록일 : 2007년 1월 15일
발행소: 충남 아산시 시민로 440번길 10, 201(온천동, 제일빌딩) / 전화: 041-534-0411 / 창간기념일 3월 3일
사업자등록번호: 311-02-29537 / 계좌: 농협 426-01-018594
메일 : munhak21@hanafos.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정준
Copyright ⓒ 2006 C뉴스041. All rights reserved / Contact munhak21@hanafos.com for more information.
C뉴스041의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