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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은 연재 - 웅녀의 딸들 (8)
정희왕후ㅡ철녀지존 온양에서 지다(1)
안종은
묘시(卯時 오전5~7시)에 내관 박인손이 온양으로부터 돌아와 아뢰기를
“대왕대비께서 3월 30일 술시(戌時 오후7~9시)에 승하하셨습니다.”
                                                  ‘성종실록’ 14년(1483) 4월 1일조
 
 조선 7대왕 세조의 왕후(왕비)였으며, 자신의 둘째 아들 예종(1450~1469)이 즉위 13개월 만에 스무살 나이로 요절하자 첫째 아들이었던 의경세자(덕종 1438~1457)의 13세 된 둘째 아들 자산군(자을산군)을 지목하여 왕위(성종)에 올리고 약 7년간 수렴청정한 대왕대비 정희왕후 윤씨의 부음 기사다. 죽기 여러 해 전부터 심한 속병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백약이 무효인 상태인지라 마지막으로 온천요법에 의지하여 병을 다스리고자 당시 왕대비였던 예종비 안순왕후(인혜대비) 한씨, 현 임금 성종의 생모이며 추존왕인 덕종비였던 소혜왕후(인수대비) 한씨 등 두 청상(靑孀)의 며느리와 함께 마지막 꽃샘추위가 더딘 봄의 발걸음에 딴지거는, 2월 16일에 만조백관의 전송을 받으며 궁궐을 떠나 온양온천행궁에 2월 19일 도착하여 40일간 체류하다 끝내 환궁하지 못하고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쳤으니 그녀의 나이 66세였다.
 
 실록 3월 24일 기사에 왕이 승정원에 “오는 4월 초5일에 삼전(三殿)께서 궁궐로 돌아오시어 잔치를 베풀 때 중국음악인 당악을 쓰지 말고 우리나라 음악인 속악을 사용할 것이며, 장악원 기생 전원과 악공 50명을 쓰게 하라”는 전교를 내린 것으로 보아 비록 그녀의 건강상태가 더 이상 호전이 되지는 않았으나 환궁하는 것조차 의심하지는 않았던 걸로 보인다. 그해 봄 가뭄이 심해서 비가 내리지 않아 예조에서 기우제를 지내자고 계청하였으나 근일에 삼전을 영가(迎駕 수레를 맞이함)하는 행사가 있으니 행사나 끝내놓고 다시 말하라고 실록 3월 25일조에 기록되어 있다. 66세라면 당시로서는 장수(長壽)한 삶이었기에 그녀의 사후에 의관(醫官)에게 죄를 묻자는 대사헌 이철견 등의 주청을 성종이 거절한 것으로 보면 돌연사가 아닌 오랜 지병으로 인한 죽음으로 보아야겠다. 국상(國喪) 소식을 접한 4월 1일 당일에 국장도감을 설치하고 좌의정 윤필상을 빈전도감도제조로, 영의정 정창손과 영충추부사 이극배를 국장도감도제조로 삼아 국장을 준비하였다.
 
 4월 17일 온양온천행궁에서 두 며느리가 뒤따르며 호곡하는 가운데 발인을 하여 20일 삼전도(서울 송파구 송파동)에 도착하여 한강을 건너 궁궐로 들어가지 않고 도성 밖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의 사저에 재궁(梓宮)을 안치하고 빈소를 차렸는데 실록은 이 과정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다. 당시 대왕대비였던 정희왕후가 신병치료차 머물던 온양행궁 내에서 이상한 징후들이 있었으니, 그녀를 수행하였던 여승과 궁녀가 갑자기 발병하여 행궁을 나가게 되었으며, 그녀의 질병을 오래전부터 살펴보았던 권찬(權攢)마저도 병을 얻었으니 실록에는 이를 병기(病氣)라고 기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녀가 운명하였으니 빈소를 정함에 있어 여러 대신들은 재궁을 궁궐 밖의 사저에 봉안함은 나라의 지존인 국모(國母)에 대한 예의상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러우며, 중국의 사신이 빈소에 조문하고 이리저리 둘러보기가 비좁으니 굳이 경복궁이 아니더라도 궁궐 내에 재궁을 안치하고 빈소를 차리기를 주청하였으나, 젊은 손자 임금의 건강을 염려하여 “내 병이 이미 깊고 중하니 내 죽음을 당하여 만약에 질병과 흉한 일이 발생하면 주상으로 하여금 임하여 보시기를 원치 않는다” 라는 그녀의 유언과 임금의 모후인 인수대비의 뜻에도 부합함으로, 장지로 정한 광릉에서 가깝고 편한 동대문 밖에 있는 효령대군과 영순군 이부의 사저가 물망에 올라 이부의 사저에 빈소를 정하고 43일간 국장절차를 마친 후 6월 3일 폭우가 내려 냇물이 범람하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발인하여 6월 12일 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광릉 동혈에 안장하였다.
 
 정희왕후가 위장병의 일종인 ‘적취(積聚)’를 치료함에 온천수의 효험을 보고자 노구를 이끌고 온양온천행궁에 내려왔으나, 이미 몸이 너무 노쇠하여 뜨거운 탕에 입실하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으니 그녀가 온양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에 성종은 의관 권찬에게 이르길 “목욕은 예정할 수가 없으니 다만 두 대비전에 아뢰어 처리함이 가하되 억지로 목욕하는 것은 불가하니 말리도록 하라”고 할 정도로 기력이 쇠잔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번으로 온양행차가 자신의 건강 등 여러 가지 여건상 마지막 온양행궁 나들이가 됨을 모르진 않았을 터이지만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온양행을 감행한 것은, 그녀에게 있어 온양은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추억이 서려있는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생전에 그녀는 모두 다섯 차례나 온양행궁에 행차하였다. 그 첫 번째가 세종 22년(1440) 온행(溫行)이다. 그녀에게는 시어머니였으며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 심씨(1395~1446)가 풍병(風病)이 재발하여 온양행궁으로 행차하였다. 소헌왕후 심씨로서는 7년 전인 세종 15년(1433)에 남편인 세종과 본인의 질병 치료차 왕세자(뒷날의 문종)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온행하여 22일간 체류하며 휴양하고 온천욕의 효험으로 세종과 자신 모두 건강을 회복하고 환궁한 이래 두 번째 온행이었다. 세종 또한 안질,종기,부종,소갈(당뇨)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는 상태였지만 민폐를 염려하여 온양행차는 못하고 둘째 아들인 진양대군(수양대군)과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으로 하여금 모후인 소헌왕후를 호종하도록 하였다.
 
 세종실록에는 소헌왕후 온행시에 수양대군이 동행한 기록만 있을 뿐 정희왕후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여러 정황상 그녀 또한 몸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지근거리에서 수발하고자 남편인 수양대군과 함께 온행하였을 것이다. 이미 그녀는 12년 전 세종 10년(1428) 그녀의 나이 11세, 수양대군의 나이 12세에 혼인하여 한참동안(세자를 제외하곤 장성한 왕자는 결혼 후 출궁하는게 왕실 법도인지라 불과 몇 달이었겠지만) 궁궐에 머물면서 시어머니 소헌왕후로부터 엄격한 궁궐의 법도에 관한 교육을 받았고 이를 훌륭히 실천하여 시부모의 큰 사랑을 받았다고 실록은 전하니 “시부모를 받들어 섬김에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음식과 의복을 올릴 때에도 반드시 먼저 몸소 살피는 등 갖은 정성을 다하니 이 때문에 시부모가 다른 며느리보다 더 사랑하셨다”라는 기록이다.
 
 세종과 소헌왕후는 슬하에 8남 2녀를 두었지만 큰며느리 복은 지지리도 없었다. 장남인 세자(문종)가 영특하고 인격이 뛰어났지만 세자빈으로 책봉된 두 며느리가 세자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해괴망측한 방술과 동성애를 하다 궁궐에서 쫓겨났으니 그 첫 번째 며느리가 김오문의 딸 휘빈 김씨였다. 그녀는 남편인 세자의 사랑을 얻고자, 교미하는 뱀을 잡아 가루로 만들어 먹으면 남편의 사랑을 되돌릴 수 있다는 압승술을 시행하다 발각되어 폐빈되고 쫓겨났으며 두 번째로 맞이한 봉려의 딸인 며느리 순빈 봉씨마저 세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궁궐에서 시중드는 여종을 침소로 끌어들여 동성애를 일삼다 폐출되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어린 정희왕후 윤씨에게 큰 경각심을 주어 처신함에 있어 더욱 조심하였을 것이다. 세종 20년(1438)에는 첫 번째 아들(의경세자. 덕종)을 낳아 시부모께 안겨주니 세종에게도 금쪽같은 첫 번째 손자였다.
 
 세종 26년(1444) 다섯째 아들 광평대군이 5개월된 아들(영순군 이부)을 남겨두고 20세의 나이로 죽고, 채 한 달도 안 되어 일곱째 아들 평원대군마저 일점혈육도 남기지 못하고(성종 때에 예종의 둘째 아들 제안대군으로 후사를 삼음) 19세 되던 1월에 죽으니 세종과 소헌왕후는 며칠간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못 이룰 정도로 상심이 컸다. 이때부터 소헌왕후의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마침내는 둘째 며느리 윤씨의 집으로 피접(避椄 앓는 사람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요양함) 나가게 되었으니 이는 곧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의미였다. 그만큼 며느리 윤씨를 의지하고 사랑하며 편안히 여겼기 때문이었다.
 
 윤씨의 사저로 피접 나온 다음날부터 소헌왕후가 위독해지니 세종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감에 불교에 의지하여 전국 유명사찰에 환관을 보내어 제를 올리게 하였으며, 고승 80명을 윤씨의 집에 불러들여 기도를 드리게 했다. 수양대군을 비롯한 아들과 며느리 윤씨 등도 향으로 팔뚝을 지지는 연비(燃臂)를 하며 부처님의 자비를 빌었지만 피접 보름 후에 소헌왕후 심씨는 눈을 감고 말았으니 때는 세종28년(1446) 3월 24일 나이 52세였다.
 

▲ 안종은     © C뉴스041
 <필자 - 안종은>
 
- 아산시 좌부동 초원아파트 거주
- 온양아산신문 <현대시평>1년 연재
- 용화동 소재 아나고구이 전문점<통영바다>에서
  『장자』「양생주편」‘포정해우’에 나오는
   ‘긍경(肯경)의 도(道)’를 얻기 위하여 ‘포정(庖丁)의
   칼’을 빌려 아나고를 가르고 있음.
- 손전화 011-9811-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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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8/29 [23:31]  최종편집: ⓒ C뉴스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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